지난 포스트 (http://fissure.tistory.com/entry/하나님의-언어) 에 이어 몇자 더 적어 봅니다. 지난 번 글은 간단히 요약하지만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가 인간의 게놈을 연구한 결과 진화의 증거가 너무나 뚜렸해서 만일 신이 직접 생물들을 각 종류대로 창조했다면 아무 이유없이 (또는 인간을 속이기 위해) 유사한 유전자들을 각 동물속에 넣어 놨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신이 첫 생물을 창조했지만 그 이후 진화에 의해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얼핏 들어보면 좀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즉, 진화의 증거가 그렇게 뚜렸해서 진화를 인정하면 그만이지 거기다가 또 신을 꼭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냐 하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엔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 곧 무신론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진화론은 생물이 작고 단순한 생명체로부터 더 크고 복잡한 생명체로 변했다는 것이지 어떨게 생명이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먼 옛날 단세포 생명체로 부터 진화했다는 것은 증거가 확실하지만 그 첫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 박사는 진화론 반대론자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이분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호일의 유명한 계산법이 있지요.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원시 수프에 20개의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박테리아 하나에는 약 2000개의 다른 종류의 효소 (단백질) 가 있습니다. 각 단백질은 3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20개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 300개가 정확히 제 위치를 찾아 필요한 단백질 하나를 만들 확율은 300의 20제곱 분의 1 입니다. 그런데 사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순서가 완전히 똑같지 않아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걸 감안해서 박테리아에게 필요한 2000개의 단백질 중 하나가 우연히 생성될 확율을 대략 10의 20제곱 분의 1로 잡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단백질이 2000개니까 이게 모두 우연히 합성될 확율은 10의 20제곱에다가 다시 2000제곱을 한 숫자 분의 1 입니다. 그래서 박테리아가 우연히 생성될 확율은 10의 40000제곱 분의 1. 이런 일은 빅뱅으로부터 지금까지 450억년 동안 100만마리의 원숭이가 마구잡이로 타이프를 쳐서 햄릿을 만들어낼 확율과 비교할 만합니다. 즉,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다는 주장입니다. 호일은 이런 것을 동네 고물상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보잉 747 비행기가 만들어져 있을 확율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많은 생물학자들이 호일의 주장에 반박합니다. 대부분의 주장은 첫 생명체가 박테리아 같이 복잡한 게 아니였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첫 생명체는 아마도 한 가닥의 RNA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명체의 정의는 물론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체입니다. 한가닥의 RNA가 우연히 생길 확율은 물론 박테리아 한마리가 우연히 생길 확율보다는 작겠지요. 그리고 RNA가 스스로 복제를 하다보면 우연한 돌연변이가 생겨서 서열에 변화가 생길텐데 그중에서 생존에 유리한 돌연변이들만 살아남고 그렇제 않은 것들은 도태되면서 (진화론의 기본 원리가 되는 자연선택입니다) 조금씩 더 복잡한 개체로 진화했다는 겁니다. 그럴 듯한 추론이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 같은 건 전혀 없고 사실 이런 부분이 앞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좀 회의스럽습니다. 결국 생명의 근원이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진화론이 똑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생명체가 단순한 생물로부터 복잡한 생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신이 첫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그렇게 억지는 아니라는 거죠.
또 한가지 유물론적 진화론의 문제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설명할 틀을 주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과연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복잡한 화학 반응의 결과물일 뿐일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한가지 예로 정신이 거꾸로 물질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화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이 걸리고 거꾸로 신바람이 나면 초인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것들을 보면 뭔가 정신세계가 물질세계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유물론적 관점에선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더우기 현대 양자 물리학에서는 관찰자의 존재가 물질세계의 존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데 현대 분자 생물학에선 거꾸로 19세기 물리학적인 기계론적 유물론을 따라가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결국 생명의 탄생에 관해 유물론적 진화론을 믿는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에 비해 그다지 더 과학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거꾸로 신의 창조를 믿는 것이 유물론을 믿는 것에 비해 비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콜린스 박사가 "하나님의 언어"에서 말하려고 했던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새 신문, 잡지들에서 오가는 글들, 심지어는 학계에서 오가는 논쟁들도 과학과 신앙의 경계선을 분명히 정하지 못해서 불필요한 적개심들이 많다고 보입니다. 과학의 증거들을 냉정히 받아들이되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부분을 과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넘어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